# 포스팅 내용이 좀 길어졌다. 잘한 것도 없는 내 이야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지려나? 말 그대로 나의 시각은 삐딱하게 보는 관점이다. 경제와 경제학은 확연히 다르다. 정의부터 다르다. 경제학은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의 학문이고 경제는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간 행위, 국가 또는 타국의 생산, 교환, 분배, 재화 및 소비와 관련된 인간의 모든 행동을 일컫는다. 따라서 학문은 과거형이고 경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를 바탕으로 해서 연구한 결과가 맞는 경우도 있지만 항상 사람은 진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변수에 의해 과거의 데이터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가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가정하지 않으면 변수가 많아져서 분석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학자가 말하는 말과 실물경제의 괴리감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쉬운 예로 주식 시장에서 애널리스트가 존재한다. 그들은 경제현황, 시장 상황, 기업의 재무제표, 유동성 흐름 등을 토대로 종목을 분석하고 리포트를 내놓지만 오래 주식을 한 사람들은 참고만 할 뿐이고 사고자 한다면 나름대로의 투자방식, 루틴을 가지고 확신이 들 때 매입한다. 하지만 초보자들은 애널리스트의 추천이 뜨면 바로 매입하다가 낭패를 볼 때가 많아진다. 심리전에도 능해야 하고 단기, 장기로 접근할 것인지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며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렇게 쉽게 벌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로소득이고 투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잃어버린 자본에 대해서는 욕심이 지나치니까 그런 것이고 도박판이니까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불법이 아닌데도...
이 호구의 견해로는 무능하고 유능하고의 문제라 생각하지 않고 관점과 선택의 차이라고 본다.
아무리 좋은 떡이라도 내 관점에서 아니면 좋은 것이 아니고 선택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역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는 부동산, 주식과 같은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 자체에도 해당된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늘 함께 한다. 그러한 선택이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고, 이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지적해주는 책이 엠제이 드마코의 저서인 <부의 추월차선>이다.
선택의 결과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력만 한다고 다 될까? 방향성이 잘못되었다면 그건 허공에 삽질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과녁을 보고 활을 쏘아야지 과녁을 등지고 아무리 쏘아봤자 헛된 노력인데 일반적으로 열심히 노력을 하면 그에 따르는 보상을 받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이런 호구가 바로 나 자신이다. 롭 무어의 저서인 <레버리지>의 내용을 본 다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 한번 호구는 영원한 호구(?)
자금 계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어머니께선 한 가지 사실을 나중에 알려주셨다. 친척에게 돈을 빌려주셨다. 필이 느껴지지 않는가? 뒤통수 맞았을 것이라는? 오래전 이오공감의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아주 모자지간에 나란히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 나는 한 번 더 맞게 된다. -
결국 애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차선책으로 다시 계획을 세웠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 이미 집은 팔렸고 수원 지역 내에서는 분양물량이 남아있는 게 없었고, 남은 지역은 선택할 가치를 못 느꼈다. 당시에 용인을 꼽았던 이유는 서울과의 접근성은 꼽지 않았다. 전원도시 형태 개념이 더 맞았고 초대형 평형이 잘 팔려나갔던걸 확인했다. 즉, 돈이 있는 양반들이 주로 매입했다는 점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사람들은 더욱 아니라면 서울의 수요자들은 수원을 선택할리가 없다는 생각이었고 또 여러 택지개발 지구가 용인과 수원의 경계선 쪽에 포진하고 있었다. 광교신도시도, 동백지구, 특히 지금은 광교 호수가 된 원천유원지 부근은 영통지구와 인접하고 용인의 상현동과도 연결되기도 했다.
공부한 보람이 있었지만 제기랄, 우리 집이 되진 않았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동백지구를 기점으로 부동산의 급등세가 멈출 줄을 몰랐고 미분양이었던 용인의 상현동, 성복동 물량은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이때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용인터미널 근처의 미분양된 '자이 아파트'를 선택하게 되었다. 33평형인데 더 넓어 보이기도 했고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투자가치는 경전철 하나로는 어림없었고 단지 실거주로 만족하기로 했다. 물론 미분양이 소진되고 가격은 오르기 시작했는데 계속 올라주지 못했다. 나중에는 발목을 잡기까지 했는데 무리한 투자로 경매로 넘어가는 물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패대기를 쳤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팔지 않으면 그만인걸? 실거주 목적이 강했기 때문에 대출도 받아서 진행했고 가격이 떨어져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올라갔던 상승분을 갉아먹는 것이기 때문에 어쨌든 팔아도 이익은 생긴다.
이사를 오는 중에 또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수원의 집을 매도하기 전에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이다. 일용직이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오산에 있는 자동차 배터리 공장이었다. 또 오산인가? 여기선 몸빵 일이었다. 일용직이다 보니 고정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 투입이 되었는데 처음 투입된 곳에서의 일은 정말 나와는 맞질 않았다. 하루 종일 움직여봐야 고작 몇 미터 내외에서 왔다 갔다 하며 하는 작업이었는데 매일 같은 곳에 투입되면 그만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그다음 날은 제품 출하 창고에 배정받았는데 일을 알려준다던 반장이 회의에 가는 바람에 놀기 뭐해서 전표에 찍힌 모델을 한 곳에 모아봤다. 반장이 오더니 일을 해봤냐는 식으로 묻는 거였다. 처음 하는 일인데요?라고 하자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혼자 잘한다고 아예 일용직 담당한테 가서 날 고정으로 출하 창고로 오게 만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반장의 입장은 그게 아닌 것이다. 매일 사람이 바뀌니 매일 알려줘야 했고 자신이 자리에 없을 때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거였다. 그 이후로 특혜 아닌 특혜도 받았다. 전표의 물량을 마무리하고 나면 그냥 앉아서 쉬라고 하고 눈치가 보일 땐 밖으로 데리고 가서 지게차에 앉혀놓고 자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적응하는 것도 잠시 공장에서 일용직 퇴출의 명령서가 날아왔다. 외주업체 상주시키고 일용직은 내보낸다는 결정이 난 것이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나? 또 집에서 한숨을 푹 쉬고 있어야 했다. 집은 계획대로 매도 계약서를 작성했고 미분양도 대출받아가며 용인으로 가기로 결정했는데 난관에 빠진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하루 땜빵 요청이 들어와 그 공장으로 갔다가 출하 창고 부서의 부장(일용직에서 유일하게 회사 회식에 두 번이나 참석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서 안면이 있었음)과 인사를 하게 됨과 동시에 그 외주업체를 소개해줘서 정직원으로 일을 하게 되는 좋은 결말을 겪게 되었지만 역시 용인으로 이사를 가게 되니 오산과 용인을 오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차를 살 수 있는 형편도 되질 않았으니 또다시 백수의 길을 걸어가야 했다. 막장 스토리도 아니고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아버지도 퇴사하고 서예 학원을 하시다가 접은 상태에 그 돈은 친척집에 물려서 날아가고 대출은 받아서 이사 왔는데 다 놀고 있으니 역시 호구라 할 수 있었다. 한번 호구는 영원한 호구인가 보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눈 앞이 깜깜했다.
서울로 오게 되면서 지방과의 격차가 이렇게 심할 것이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서울로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하고 치부해버렸는데 서울은 서울이었다. 직장을 옮기고 나니 매매할 여유가 없어 전세를 놓고 부모님과 함께 광진구 자양동에서 전세살이를 시작했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아파트를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했고 2021년 현재는 말할 기운도 없다.
오늘 날짜 기사 하나를 보자. 내용을 보지 않아도 헤드라인으로 느낌이 팍팍 온다. 참고로 25평대 아파트를 기준으로 한 기사다. 즉 집을 산다면 회사 때려치우고 사업해서 돈을 벌어야 가능하단 이야기다.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1&sid2=260&oid=031&aid=0000579054
용인에서 거주한 시간은 3년 정도밖에 되질 않아 용인에서의 추억은 별로 없다.
내가 아파트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은 단지 비싼 가격 때문이 아니다. 살 자금이 있다 해도 구매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나에게 있어선 빌라가 더 편하고 좋다. 물론 과거에는 아파트를 사야 한다고 생각을 많이 했었고 아파트가 장점이 없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효율적인 선택이 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월급 모아도 118년 걸린다는데... 118년 동안 아파트를 사기 위해 돈을 모을 생각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다음 포스팅에선 왜 미련을 버린 것인지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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